5 핸드아웃 설계
이 파트는 각본가가 핸드아웃을 만들고 시나리오와 엮는 방법을 다룹니다. 연기자가 핸드아웃을 어떻게 읽고 연기하는지는 캐릭터 작성 파트의 핸드아웃 파트(Section 2.1)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각본가의 설계 작업에 집중합니다.
이 파트는 핸드아웃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시나리오를 전제로 합니다. 『언더페이스』의 시나리오는 핸드아웃을 받은 소수의 주인공들이 정해진 장면을 따라가며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이 방식은 닫힌 무대에서 펼쳐지는 집중된 드라마에 강하지만 연기자가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자유로운 탐색, 여러 세션에 걸친 장기 캠페인, 사전 준비에 들일 시간이 없는 상황 등에는 잘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5.1 핸드아웃의 형식
핸드아웃은 한 번에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각본가는 핸드아웃을 정해진 시점에 나누어 연기자에게 전달합니다.
시나리오를 시작할 때 배부하는 핸드아웃을 초고(初稿)라 합니다. 초고에는 캐릭터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모두 담겨 있어야 합니다. 초고는 표면과 이면으로 나뉘는데, 표면에는 신원과 배경, 공개된 관계, 표면 동기, 그리고 기능 목록이 담기고(Section 2.1.2) 이면에는 이면 동기를 비롯한 비밀이 담깁니다.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도중 비밀이 갱신되면 핸드아웃은 수정고(修正稿)로 바뀝니다. 수정고는 비밀의 갱신과 공개를 반영하며(Section 5.3), 이야기(비밀)만을 갱신할 뿐 기능이나 점수 같은 기계적 정보는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한 정보는 모두 초고에 고정되므로, 기능 목록은 반드시 초고에 두어야 합니다.
비밀의 갱신은 비밀을 이루는 조각의 차원에서 일어나며, 수정고는 그 갱신이 반영된 핸드아웃의 현재 상태입니다. 조각의 구조는 Section 5.3.1 에서 다룹니다.
5.2 핸드아웃 작성
『언더페이스』는 시나리오 작법서가 아니므로, 좋은 이야기를 쓰는 법 자체를 깊이 다루지는 않습니다. 핸드아웃을 만들 때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안내합니다.
핸드아웃은 한 장씩 완성하기보다 여러 핸드아웃을 층층이 쌓아 올리며 만드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관계처럼 여러 핸드아웃에 걸치는 요소를 한 번에 설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순서는 그러한 층의 작성 순서입니다.
5.2.1 토대: 이야기와 등장인물
먼저 시나리오의 중심 이야기와 등장인물을 정합니다. 이때 핸드아웃 시나리오에 적합한 이야기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핸드아웃은 이야기의 주인공 역할이므로, 이야기는 다음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 연기자 수만큼의 대등한 주인공을 수용할 수 있을 것. 한 명만 빛나는 이야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 정해진 장면이 이어지는 진행 구조에 얹을 수 있을 것.
- 각 주인공이 이야기에 불가결할 것. 누구 하나가 빠지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도록, 모든 주인공이 이야기를 굴리는 톱니가 되어야 합니다.
등장인물을 정할 때에는 누구를 핸드아웃(연기자가 맡는 주인공)으로, 누구를 NPC(각본가가 운용하는 인물)로 둘지 가릅니다. 뒤에서 다룰 비밀 체계는 핸드아웃에만 적용됩니다. NPC의 비밀은 각본가가 쥐고 있는 일반적인 시나리오 정보로 다루면 됩니다.
대학 동아리 시절, 부주의로 인한 사망 사고가 있었고 동료들은 이를 은폐했다. 수년 후, 그 죽음과 가까웠던 누군가가 사고에 연루된 이들에게 살해를 예고하기 시작한다. 예고는 이미 한두 건 실행되어 위협은 실체가 되었다.
세 명의 주인공(핸드아웃)은 모두 그 동아리 출신이며, 사고에 각기 다른 위치로 얽혀 있다. 살해를 예고하는 범인은 NPC로 두어 각본가가 그 정체와 동기를 쥔다. 세 주인공이 각자 사고의 한 조각을 쥐고 있으므로, 누구 하나가 빠지면 진실이 완성되지 않는다.
5.2.2 역할: 이야기를 경험하는 위치
다음으로 각 핸드아웃마다 이야기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큰 역할을 배정합니다. 이때 각 핸드아웃이 이야기에서 서로 다른 위치를 차지하도록 분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사건을 다루더라도 인물마다 다른 자리에 서게 하면, 모든 연기자가 고유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역할은 캐릭터의 이면 동기와 일치할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표면 역할이 이면 동기를 가리는 위장이 되면 강한 반전을 낳지만, 그만큼 위장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하는 부담이 따릅니다. (역할과 이면을 얼마나 멀리 둘지는 이면 동기를 설계할 때 함께 정합니다. Section 5.2.4)
역할을 분화시키다 보면 자연스레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떠오릅니다. 이 단계에서는 누가 누구와 엮이는지의 골격만 그려 둡니다. 관계의 구체적인 내용은 뒤에서 채웁니다(Section 5.2.6).
세 주인공의 공개 역할을 서로 다른 위치로 나눈다.
- HO1: 사고에 연루된 평범한 시민. 예고를 받은 피해자로서 사건에 쫓겨 보호가 필요한 역할이다.
- HO2: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제도 안쪽에서 수사 권한과 정보망을 통해 움직인다.
- HO3: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 제도 바깥에서 취재와 폭로의 힘으로 움직인다.
HO2와 HO3은 둘 다 사건을 쫓는 역할이지만, ’제도 안’과 ’제도 밖’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여한다.
5.2.3 핸드아웃 기능: 인물상의 표현
각 핸드아웃에 그 핸드아웃이 표방하는 인물상을 나타내는 3~5개의 기능 목록을 배정합니다. 기능은 공개된 역할과 어울려야 하며, 이면 동기를 누설하는 기능을 넣어서는 안 됩니다. 기능 목록은 공개 정보이므로, 목록만 보고도 숨은 동기가 드러난다면 비밀이 새는 것입니다.
기능의 개수는 그 인물이 이야기에서 맡은 폭을 나타냅니다. 다만 기능이 적다고 해서 항상 하나의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인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에서 맡은 역할의 폭이 좁은 평범한 인물의 경우에도 핸드아웃 기능이 적을 수 있습니다.
핸드아웃들의 기능 목록이 부분적으로 겹치는 것은 무방합니다. 다만 각 핸드아웃은 최소한 하나의 고유한 기여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모든 연기자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고유한 기여는 반드시 기능일 필요는 없으며, 그 인물만이 쥔 정보나 비밀일 수도 있습니다.
이면 동기가 특정 기능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그 기능을 공개된 역할로 정당화하여 기능 목록에 넣거나, 이면의 비공개 부분에 “이 동기를 위해 해당 기능에 개인 점수를 투자할 것을 권한다”고 적어 둡니다. 후자는 비공개이므로 비밀을 누설하지 않습니다.
표적이 된 시민 HO1은 사건을 쫓는 인물이 아니므로, 기능을 적은 수인 3개로 좁게 둔다. HO1은 이야기에서 맡은 역할 폭이 좁기 때문이다.
기록과 문서를 다루는 사무직이라는 평범한 직업에서 조사, 곤경에 처한 일반인의 대인 능력에서 설득, 위협을 감지하는 감각에서 통찰을 가져와 설정한다. 셋 모두 공개된 역할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며, 그가 감추고 있는 진짜 동기(사고의 은폐)를 누설하지 않는다. HO1을 이야기에 필수적이게 만드는 것은 HO1이 알고 있는 ’진실’이기 때문에 기능 측면은 무난하게 챙겨도 된다.
5.2.4 이면 동기: 이야기를 굴리는 힘
각 핸드아웃에 이야기를 굴리는 진짜 동기를 부여합니다. 보통 이 동기는 이면(비밀)에 자리합니다. 각본가는 먼저 이 이면 동기를 정하고, 그것을 가리는 표면 동기를 나중에 씌우는 순서로 작업합니다. 가릴 대상이 먼저 있어야 가림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이면 동기는 인물을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단지 인물의 배경을 두껍게 하는 설정(출신, 과거사 등)으로 이면을 채운다고 동기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방향과 대상이 뚜렷한 동기(예: 누군가에 대한 복수심)는 인물을 움직일 잠재력이 크고, 막연한 감정(예: 어렴풋한 불안)은 힘이 약해 인물을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동기가 인물을 움직일 잠재력을 갖추었는지를 판별합니다. 그 동기가 실제로 어느 장면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지(잠재력의 실현), 그리고 역할과 이면의 거리가 반전으로 터지는 연출은 모두 비밀의 시간 배치에 달려 있으므로 Section 5.3 에서 다룹니다. 또한 이 단계에서 역할과 이면 동기를 얼마나 멀리 둘지 정합니다(Section 5.2.2).
세 주인공의 이면 동기를 사고와의 거리에 따라 다르게 둔다. 가해 당사자인 시민 HO1은 발각의 두려움을, 목격자인 기자 HO3은 진실을 폭로할지 묻어 둘지의 갈등을 품는다.
특이한 것은 형사 HO2다. 그는 그날 현장에 있었으나 진상을 몰랐던 인물로, 시나리오 초반에는 “범인을 검거한다”는 표면과 다를 바 없어 숨길 이면이 없다. 그의 이면 동기는 진상이 밝혀진 뒤에야 생긴다. 자신이 아끼던 동료들이 진짜 죄인이고 범인은 그 피해자였음을 알게 되면서, 법대로 범인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동료들에 대한 단죄를 묵인할 것인가의 갈등에 빠진다. 이처럼 이면 동기는 처음부터 인물이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드러날 수도 있다.
5.2.5 표면: 이면을 가리는 위장
이면 동기가 정해지면 그것을 가리는 표면 정보를 설계합니다. 표면 정보는 곧 초고의 공개 부분이며(Section 5.1), 캐릭터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기능 목록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표면 정보에 적는 동기는 캐릭터가 겉으로 내세우는 표면 동기이며, 이면의 진짜 동기와는 다릅니다. 좋은 표면은 이면을 자연스럽게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표면과 이면이 같은 행동으로 나타나되 그 이유가 다르도록 설계하는 것이 좋습니다.
캐릭터의 구체적인 신원, 한 줄로 압축한 컨셉, 시나리오 도입 시점의 위치 등은 형식상 필수적인 항목은 아니며 필요에 따라 적으면 됩니다. 특성치나 기능의 우선순위도 핸드아웃에 적지 않습니다. 같은 핸드아웃이라도 연기자의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다양한 캐릭터가 생겨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자 HO3의 표면 동기는 “범행을 막고 진실을 보도한다”이다. 이는 정의로운 기자의 모습이며, 다른 연기자에게도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그의 이면 동기는 목격한 진실을 폭로할지 묻어 둘지 망설이는 것이다. 이 구성에서는 표면 동기에서 보이는 적극성(진실을 쫓는 기자)이 이면의 머뭇거림(진실을 폭로할지 망설임)을 가린다. 이 경우 표면과 이면은 어긋나지만 모순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표면과 이면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실은 달라야 설득력 있는 위장이 가능하다.
5.2.6 관계: 인물들을 잇는 끈
역할 단계에서 그린 관계의 골격에 내용을 채우는 단계입니다. 핸드아웃에는 고유한 번호(HO1, HO2 등)가 붙지만, 번호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는 규칙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HO1과 HO2가 원수일지, 연인일지, 남남일지는 전적으로 각본가가 정합니다. 번호는 빈 그릇이며, 그 안에 무엇을 담을지는 각본가의 몫입니다.
관계를 채울 때에는 각 관계를 다음과 같이 분류합니다. 각 분류가 적절히 배분되는 것이 좋습니다.
- 표면 관계: 처음부터 공개되는 관계. 초고의 표면에 담깁니다.
- 정적 이면 관계: 감춰진 채로 고정된 관계. 공개되기 전까지 그대로 유지됩니다.
- 동적 이면 관계: 시나리오 진행에 따라 갱신을 통해 드러나거나 깊어지는 관계.
동적 이면 관계가 언제 어떤 계기로 드러나는지는 Section 5.3 에서 다룹니다.
관계는 양쪽이 똑같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한 관계라도 끝점마다 다르게 인지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대칭 관계를 설계할 때에는, 먼저 두 인물 사이의 객관적 사실(각본가만 쥐는 진실)을 정한 뒤 그 사실이 각 핸드아웃에 어떻게 적히는지를 나누어 기술합니다. 한쪽에는 사실로, 다른 쪽에는 어긋난 믿음으로, 혹은 아예 적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한 인물에게 사실인 것이 다른 인물에게는 믿음이어야 하며, 두 기술이 서로 모순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같은 객관적 사실이 어느 핸드아웃의 어느 부분에 나뉘어 적혔는지를 기록해 두어야, 한쪽이 갱신될 때 다른 쪽의 연동 갱신을 놓치지 않습니다.
(양쪽이 똑같이 아는 단순한 관계는 이러한 2단 작업이 필요 없습니다.)
시민 HO1과 기자 HO3의 관계를 비대칭으로 설계한다. 먼저 객관적 사실을 정한다. “HO3은 그날 HO1이 사고를 일으키는 것을 목격했다.” 이 사실 자체는 각본가만 쥔다.
이제 이 사실을 두 핸드아웃에 나누어 적는다.
- HO3의 핸드아웃: “나는 그날 HO1이 한 일을 보았다.” 처음부터 이면에 담긴 정적인 비밀이다.
- HO1의 핸드아웃: HO3이 목격했다는 사실은 적지 않는다. HO1은 자신이 목격당한 줄 모른다. 이 사실은 이야기가 진행되며 비로소 HO1에게 드러나는 동적인 비밀이 된다.
한 사실이 한쪽에는 처음부터, 다른 쪽에는 나중에, 서로 다른 무게로 자리하는 것이다. 이때 두 기술이 모순되지 않도록, 그리고 나중에 HO1 쪽이 갱신될 때 HO3 쪽과 어긋나지 않도록 같은 사실에서 나온 두 기록임을 적어 둔다.
5.2.7 점검
핸드아웃을 모두 작성한 뒤에는 다음 항목들을 점검합니다. 점검 항목은 문제가 있을 때의 심각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뉩니다. 치명적 항목은 문제가 생기면 시나리오가 진행되지 못하거나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고, 경미한 항목은 시나리오는 작동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래 항목 중 개별 핸드아웃 하나만 보아도 판별되는 것은 각 층을 마칠 때 미리 점검하고, 여러 핸드아웃을 겹쳐 보아야 드러나는 것은 마지막에 점검하면 좋습니다.
| 점검 항목 | 구분 |
|---|---|
| 이면 동기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가 (단순 배경이 아닌가) | 치명적 |
| 관계 기술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가 | 치명적 |
| 비대칭 관계의 연동 갱신이 기록되었는가 | 치명적 |
| 이면 동기가 필요로 하는 기능의 확보 경로가 있는가 | 치명적 |
| 관계가 모든 핸드아웃을 엮는가 (홀로 떨어진 인물이 없는가) | 치명적 |
| 표면이 이면을 충분히 가리는가 | 경미함 |
| 기능 개수가 인물의 컨셉과 맞는가 | 경미함 |
| 각 핸드아웃이 고유한 기여를 가지는가 | 경미함 |
| 모든 핸드아웃이 이야기에 불가결한가 | 경미함 |
5.3 비밀과 시나리오 엮기
핸드아웃의 비밀을 시나리오와 엮는 핵심은 비밀을 드러낼 장면을 정하는 것입니다. 비밀의 동기를 이야기로 실현하는 것도, 위장을 반전으로 터뜨리는 것도, 감춰진 관계를 드러내는 것도 모두 “어떤 비밀을 어느 장면에서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라는 한 가지 작업으로 모입니다.
『언더페이스』에서 시나리오는 연속되는 장면으로 이루어집니다. 장면이 곧 사건이며, 사건이 없는 장면은 없습니다(휴식 같은 사소한 막간은 예외입니다). 이 장면들은 한 방향으로 이어지며, 약간의 갈림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5.3.1 비밀의 구조
비밀은 하나의 고정된 글이 아니라 번호로 식별되는 조각의 묶음입니다. 비밀에 일어나는 일은 두 가지 축으로 나뉩니다.
갱신은 비밀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고, 공개는 비밀을 다른 연기자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독립적이므로, 각 사건마다 “내용을 바꾸는가”와 “공개 상태를 바꾸는가”를 따로 물어야 합니다.
갱신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 병합: 기존 비밀에 모순되지 않는 새 조각을 더합니다. 비밀의 번호는 그대로 유지되며, 이전 조각도 유효하게 남습니다. 기존 내용이 여전히 참일 때(심화) 사용합니다.
- 무효화: 기존 비밀이 거짓으로 판명되었을 때, 그 비밀 묶음 전체에 취소선을 긋고 새 비밀을 새 번호로 발급합니다. 무효화된 묶음도 기록에 남습니다.
어느 쪽을 쓸지는 의미로 가립니다. 기존 내용이 전부 참이면 병합, 전부 거짓이면 무효화입니다. 조각들 중 일부만 거짓인 경우에는 병합으로 처리하되, 무엇이 사실이 아니었는지를 새 조각의 서술로 분명히 짚어 줍니다. 다만 거짓인 조각들이 더 많아서 부정하는 서술이 번잡해진다면, 전체를 무효화하고 새로 쓰는 편이 깔끔합니다.
무효화는 비밀 묶음(초고, 수정고) 단위로만 이루어집니다. 조각 하나만 따로 취소할 수는 없습니다.
5.3.2 공개의 원칙
비밀의 공개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 비밀이 공개될 때에는 항상 모든 연기자에게 공개됩니다. 일부에게만 공개하는 일은 없습니다.
- 공개된 비밀은 연기자가 아는 것이지 캐릭터가 아는 것이 아닙니다(Section 2.1.4).
- 비밀의 갱신은 그 내용과 무관하게 모든 연기자에게 알려집니다. 비밀이 비공개로 갱신되더라도 “누군가의 비밀이 갱신되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압니다. 이는 내용을 모른 채 변화를 감지하게 하여 테이블에 긴장을 줍니다.
- 각 핸드아웃의 필수 동기(이면 동기)는 시나리오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공개됩니다. 그 밖의 부가적인 비밀은 시나리오 진행을 통해 획득(갱신)된 경우에만 공개되며, 끝내 열리지 못한 채 남을 수도 있습니다.
- 비밀이 공개될 때에는 초기의 모습부터 갱신되어 온 과정까지(무효화된 조각을 포함하여) 전 과정이 드러납니다. 이를 통해 그 인물의 진실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가 함께 밝혀집니다.
5.3.3 비밀을 장면에 배치하기
각 비밀의 공개와 갱신을 장면 위에 배치할 때 다음 항목들을 결정합니다.
어떻게 열리는가. 비밀을 여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장면 관문은 진행하면서 필수적으로 지나는 길목에 비밀을 두는 것이고, 조건 분기는 특정 정보를 얻은 경우에만 비밀이 열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판단 기준은 “이 비밀이 열리지 않으면 이야기가 멈추는가”입니다. 멈춘다면 장면 관문에 두어야만 하고, 멈추지 않고 완성도만 떨어진다면 조건 분기에 둘수도 있습니다. 즉 필수 동기는 장면 관문으로 두어 공개와 이야기의 진행을 보장하고, 부가 비밀은 조건 분기로 두어 플레이의 다양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 시점에 공개를 할지, 갱신을 할지, 갱신이라면 병합인지 무효화인지를 정합니다(Section 5.3.1).
언제. 어느 장면에 둘지 정합니다. 이때 비밀이 공개되거나 갱신될 계기가 그 장면 안에 있어야 합니다. 계기 없이 비밀이 열리면 연기자에게 갑작스럽게 느껴집니다. 또한 비밀의 공개와 갱신은 항상 장면의 진행 방향(순방향)을 따라야 하며, 이미 지나온 장면을 거슬러 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위장(표면과 이면이 어긋나는 인물)을 다룰 때에는, 표면 정보를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그와 모순되는 이면의 비밀을 공개함으로써 위장이 무너지게 합니다. 또한 비대칭 관계가 한쪽에서 갱신될 때에는, 다른 쪽의 연동 갱신도 같은 장면이나 정합적인 순서로 함께 배치해야 합니다.
5.3.4 전체의 흐름
개별 비밀을 장면에 배치하는 것을 넘어, 비밀들이 모여 그리는 전체 흐름을 설계해야 합니다.
총량이 너무 적으면 비밀과 반전의 묘미가 약해지고, 너무 많으면 이야기가 복잡해져 연기자가 따라오기 어려워집니다. 각 연기자가 자기 비밀을 머릿속에 쥐고 연기할 수 있는 양인지, 그리고 결말로 수렴하는 구간에 펼쳐 소화할 수 있는 양인지를 기준으로 삼으세요. 각 핸드아웃은 최소한 하나의 필수 동기를 가져야 합니다.
분포는 비밀을 언제 공개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공개를 늦출수록 비밀이 클라이맥스에 모여 긴장이 커지지만, 너무 늦추면 한 연기자가 자기 비밀에 갇혀 다른 이들과 단절될 수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되 연기자의 고립을 피하는 쪽으로 무게를 두세요. 비밀이 비공개인 동안에도 그 비밀이 다른 연기자와의 상호작용을 끌어내도록 하면, 비밀을 감춘 채로도 인물이 고립되지 않습니다(Section 5.2.6). 클라이맥스는 단일한 순간이 아니라 폭을 가진 구간입니다. 여러 장면에 걸쳐, 또는 한 장면 안에서도 나누어 공개할 수 있으므로, 어떤 비밀을 어떤 순서로 터뜨릴지가 연출의 효과를 좌우합니다.
갱신 빈도는 비밀을 얼마나 자주 갱신하는가입니다. 비밀 갱신은 모두에게 알려지는데, 이것이 너무 잦으면 긴장감이 무뎌지고 너무 드물면 이야기에 루즈해집니다. 비밀 갱신이 여전히 ’주목할 만한 변화’로 느껴질 만큼만 두세요. 또한 갱신이 쌓일수록 클라이맥스에 드러날 과정이 길어지므로, 그 과정이 하나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갱신을 거듭하세요.
연쇄 깊이는 한 비밀이 다른 비밀을 여는 사슬의 길이입니다. 조건 분기로 이어진 사슬은 앞 비밀이 열리지 않으면 뒤가 모두 막히므로, 한 시나리오 안에서는 얕게 유지하세요. 깊은 사슬이 필요할 경우 비밀을 장면 관문으로 이어 반드시 끝까지 풀리도록 합니다. 예외적으로 캠페인을 다룰 경우 여러 시나리오에 걸쳐 비밀이 연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먼저 비밀의 총량을 정하고, 그 위에서 나머지 세 가지를 조율하는 것이 좋습니다.
5.3.5 예시: 장면 위의 비밀
앞서 예시로 다룬 세 핸드아웃, 즉 가해 당사자인 시민 HO1, 진상을 몰랐던 형사 HO2, 목격자인 기자 HO3을 장면 위에 배치해 봅니다. 시나리오는 도입과 결말을 제외하고 여섯 장면으로 이어지는 진행 구조를 갖습니다.
| 장면 | 사건 | 이 장면에서 열리는 비밀 |
|---|---|---|
| 1 | 새로운 살해예고가 도착한다. 옛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 (초고 상태) |
| 2 | 형사와 기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파기 시작한다. | — |
| 3 | 예고가 동아리 시절의 사고와 이어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 HO2가 “그저 불운한 사고였다”고 믿어 온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 |
| 4 | 사고의 진상이 발굴된다. | HO1의 가해 사실 공개 / HO1이 ’HO3에게 목격당했음’을 알게 됨 |
| 5 | 진상이 드러난 뒤, 각자의 속내가 충돌한다. | HO2의 믿음 무효화 → 정의관 갈등으로 병합 / HO3의 망설임이 결판으로 |
| 6 | 범인과 대면하고, 각자 선택을 내린다. | 획득된 모든 비밀이 이 구간에 걸쳐 공개됨 |
몇 장면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장면 4, 비대칭의 동적 공개. 앞서 관계 예시에서 “HO3이 HO1의 가해를 목격했다”는 사실을 HO3은 처음부터 알지만 HO1은 모르도록 비대칭으로 두었습니다. 이 비대칭이 장면 4에서 풀립니다. 사고의 진상이 발굴되며 HO1은 자신이 목격당했음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이는 HO1 쪽 비밀의 갱신이며, 이때 HO3 쪽 비밀과 어긋나지 않도록 연동하여 다룹니다.
장면 5, 무효화에 이은 병합. 형사 HO2는 “그날 일은 불운한 사고였다”는 믿음을 안고 있었습니다(Section 5.2.4 의 예시). 진상이 밝혀지면 이 믿음은 거짓으로 판명되므로, 그 비밀은 무효화됩니다. 이전 비밀에 취소선이 그어지고 “동료들의 부주의와 은폐가 있었다”는 새 비밀이 섭니다. 곧이어 그 위에 “법대로 잡을 것인가, 묵인할 것인가”라는 정의관 갈등이 병합으로 더해집니다. 한 인물 안에서 무효화와 병합이 잇따라 일어나는 것입니다.
장면 6, 궤적의 공개. 클라이맥스에서 각 인물의 비밀이 공개될 때, 현재의 모습만이 아니라 그것이 변모해 온 과정이 함께 드러납니다. HO2의 경우 ‘불운한 사고라 믿던’ 처음의 모습이 취소선이 그어진 채로 남고, 진상을 알게 되어 갈등에 이르기까지의 궤적이 그대로 드러나, 무지했던 그가 어떻게 흔들리게 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처럼 같은 인물과 사건이라도 어떤 비밀을 어느 장면에서 어떻게 드러내는가에 따라 이야기의 결이 달라집니다.
5.4 핸드아웃의 배부
이 파트에서는 핸드아웃을 만든 뒤에 어느 연기자에게 어느 핸드아웃을 맡길지를 정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절차를 다룹니다.
5.4.1 핸드아웃의 배정
핸드아웃의 배정은 연기자의 희망을 우선으로 하되, 다음 순서로 진행합니다.
- 각본가는 각 핸드아웃의 공개 역할(표면)만을 연기자들에게 제시합니다. 이면의 비밀은 아직 밝히지 않습니다.
- 시나리오에 따라서는 도덕적으로 무거운 과거(가해, 배신 등)를 지닌 역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각본가는 그러한 역할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리고, 연기자에게 그런 역할을 맡을 의향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이때 밝히는 것은 비밀의 내용이 아니라 그 무게입니다.
- 연기자는 공개 역할을 보고 자신이 맡고 싶은 핸드아웃을 희망합니다.
- 희망이 서로 겹치면 각본가 주도 하에 무작위 추첨을 하거나 연기자들이 합의하여 정합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역할이 남은 경우에도 같은 방식으로 정하되, 무거운 역할은 2단계에서 의향을 표한 연기자에게 우선 배정합니다.
연기자는 공개 역할만 보고 핸드아웃을 고르므로, 자신이 어떤 비밀을 떠안게 될지는 배정이 끝난 뒤에야 알게 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고른 역할이 무거운 진실을 감추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언더페이스』 플레이의 재미입니다. 다만 그 무게가 연기자가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 되지 않도록 2단계의 사전 확인으로 참여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두는 것입니다.
5.4.2 핸드아웃의 전달
배정이 끝나면 각 연기자에게 자신의 핸드아웃 초고를 전달합니다. 이때 무엇을 누가 볼 수 있어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구체적인 도구나 방법은 각본가의 플레이 환경에 맡기되, 다음 상태가 지켜지도록 전달하세요.
- 표면은 모든 연기자가 서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이면은 그 핸드아웃을 맡은 연기자 본인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시나리오가 진행되며 비밀이 공개되거나 갱신될 때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공개되는 비밀의 내용은 모든 연기자에게 전하고, 본인에게만 갱신되는 내용은 본인에게만 전하되, “누군가의 비밀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모든 연기자에게 알립니다. 비밀이 공개되거나 갱신된 뒤 테이블에서 이를 어떻게 다루는지는 Section 5.5 에서 다룹니다.
5.5 테이블에서의 운용
여기서는 플레이가 진행되는 동안 각본가가 『언더페이스』의 주요 특징인 핸드아웃과 비밀을 테이블에서 어떻게 다루고 운용할지 설명합니다.
5.5.1 연기자와 캐릭터의 지식을 지키기
비밀이 공개되면 그 자리의 모든 연기자가 그것을 알게 되지만, 그것을 아는 것은 연기자이지 캐릭터가 아닙니다(Section 2.1.4). 이 약속을 플레이 중 실제로 지키게 하는 것은 각본가의 몫입니다.
어떤 연기자가 캐릭터로서는 알 수 없는 정보를 근거로 행동하려 할 때, 각본가는 그 행동을 부드럽게 막고 “당신의 캐릭터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는 점을 환기합니다. 연기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합의한 약속을 지키는 것임을 명심하세요. 정보가 누구의 것인지를 각본가가 늘 의식하고 있으면, 연기자도 자연히 그 경계를 따르게 됩니다.
5.5.2 비밀의 공개와 갱신을 다루기
비밀이 공개되거나 갱신되는 순간은 『언더페이스』 플레이의 고비입니다. 각본가는 이를 단순한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장면의 흐름 안에서 긴장감을 자아내는 장치로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공개되는 비밀의 내용은 모든 연기자에게 전하고, 본인에게만 갱신되는 내용은 본인에게만 전합니다.
“누군가의 비밀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더라도 모든 연기자에게 알립니다. 다른 연기자들은 무언가 움직였음을 알되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 채로 남습니다. 각본가는 이를 활용해 비밀의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테이블에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다만 갱신 알림이 너무 잦으면 그 무게가 가벼워지므로 빈도를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5.5.3 어긋남에 대응하기
각본가가 비밀의 배치를 아무리 잘 설계해도 연기자들의 선택이 예상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미리 마련해 둔 대비로도 메우지 못하는 상황이 닥치면 각본가는 그 자리에서 조정해야 합니다.
이때 지켜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필수 동기는 시나리오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공개되어야 하므로, 어떤 길로 흘러가든 그것이 드러날 자리를 잃지 않도록 합니다. 또한 즉석에서 더하는 내용도 이미 공개되거나 갱신된 비밀과 어긋나지 않게 합니다. 이 두 가지만 지키면 나머지는 비교적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5.5.4 갈등을 다루기
핸드아웃의 비밀과 동기가 충돌하면 캐릭터들이 서로 대립하게 됩니다. 이러한 캐릭터 간 갈등은 『언더페이스』가 즐길 수 있도록 의도한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간혹 캐릭터의 대립이 연기자 본인들 사이의 갈등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각본가가 갈등을 마주쳤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캐릭터 간의 갈등과 연기자 간의 갈등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지금 끓는 것이 캐릭터의 대립인지 연기자의 감정인지를 보고, 전자라면 살리고 후자라면 개입합니다.
지금의 충돌이 연기자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질 기미가 보인다면 각본가는 플레이를 잠시 멈추고 지금의 대립이 캐릭터의 것이지 연기자의 것이 아님을 환기합니다. 그래도 불편이 남으면 비밀의 공개 수위나 속도를 조정하거나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집니다. 드라마를 만드는 것보다 참여자의 편안함이 우선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Section 1.5).